감정 장사의 계보

감정 장사의 계보

재회 컨설팅에서 디지털 불멸까지. 21세기 비즈니스는 감정을 어떻게 돈으로 바꿀까를 고민한다.

헤어진 연인을 돌아오게 한다는 재회 컨설팅. 죽은 할머니 목소리를 AI로 되살린다는 디지털 불멸. 언뜻 다른 것 같지만 본질은 같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의 약점을 판다.

이별 거부의 경제학

현대인은 이별을 못 한다. 정확히는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연인과 헤어져도 인스타그램으로 염탐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카톡 대화방을 지우지 못한다. 완전한 이별이 사라졌다. 디지털 흔적이 남아있으니까. 그 틈을 파고든 게 감정 착취 비즈니스다.

재회 컨설팅은 "아직 기회가 있어요"를 판다. 500만 원짜리 희망. 디지털 불멸은 "영원히 함께할 수 있어요"를 판다. 월 9,900원짜리 영생. 둘 다 이별을 거부하는 마음을 이용한다.

실패가 성공인 장사

이 비즈니스들의 특징. 실패해도 성공이다.

재회 컨설팅이 실패하면? "최소한 노력은 했잖아요." 고객은 만족한다. 디지털 불멸이 어색하면? "그래도 목소리는 비슷하잖아요." 역시 만족한다. 애초에 기대치가 낮으니까. 아니, 기대 자체가 목적이니까.

진짜 재회를 원했다면 전문가를 찾지 않는다. 직접 연락한다. 진짜 할머니를 그리워한다면 AI를 찾지 않는다. 추억을 간직한다. 하지만 직접 하기엔 무섭고, 추억만으론 부족하다. 그래서 돈을 낸다.

감정의 아웃소싱

본질은 이거다. 감정 처리를 외주 준다.

슬픔, 그리움, 미련, 후회. 이런 감정들을 스스로 처리하기 힘드니까 돈 주고 맡긴다. 재회 컨설팅은 미련을 대신 처리해주고, 디지털 불멸은 그리움을 대신 달래준다.

예전엔 종교가 했던 일이다. 천국에서 다시 만난다, 인연은 끊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스타트업이 한다. 전략적으로 재회한다, AI로 영원히 산다.

구독형 슬픔

가장 무서운 건 이게 구독형이라는 거다.

재회 컨설팅은 1회로 끝나지 않는다. "이번 전략이 안 맞았나 봐요. 다른 걸 해보죠." 끝없이 이어진다. 디지털 불멸도 마찬가지다. 한 번 시작하면 끊기 힘들다. 할머니 목소리를 끄는 건 할머니를 또 떠나보내는 것 같으니까.

넷플릭스는 안 봐도 돈이 아깝지 않다. 하지만 감정 구독은 다르다. 끊는 순간 죄책감이 든다. 미련을 포기하는 것 같고, 추억을 버리는 것 같다. 그래서 계속 돈을 낸다.

완벽한 알고리즘

실리콘밸리가 이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가 있다. 감정은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별 후 행동 패턴은 뻔하다. 1주일은 울고, 2주일은 화내고, 3주일은 그리워한다. 이때 재회 컨설팅 광고를 띄운다. 클릭률 73%. 부모님 기일엔 더 그립다. 이때 디지털 불멸 광고를 띄운다. 전환율 89%.

인간의 감정은 데이터다. 슬픔의 주기, 그리움의 패턴, 미련의 지속 시간. 다 예측할 수 있다. 그래서 돈이 된다.

착취인가, 위로인가

물론 반론도 있다. 이게 꼭 나쁜가?

외로운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슬픈 사람에게 위로를 준다. 돈을 받긴 하지만 가치를 제공한다. 심리 상담도 돈 받고, 종교도 헌금 받는다. 뭐가 다른가?

다른 게 있다. 투명성이다. 심리 상담은 "치료"라고 말하지 "재회시켜준다"고 하지 않는다. 종교는 "믿음"을 말하지 "보장"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감정 착취 비즈니스는 불가능을 가능처럼 판다.

마르지 않는 샘

그래도 이 시장은 계속 커질 거다. 인간이 인간인 한.

사랑하고, 이별하고, 그리워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리고 그 감정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도 인간의 한계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정교하게 감정을 착취할 거다. VR로 죽은 사람과 만나고, 메타버스에서 헤어진 연인과 데이트한다.

감정은 마르지 않는 샘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그 샘에 빨대를 꽂는다.

언제까지? 인간이 로봇이 되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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