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의 젠트리피케이션

플랫폼의 젠트리피케이션

처음엔 다들 착했다

유튜브(YouTube)에 광고가 하나도 없던 2005년을 기억하는가? 넷플릭스(Netflix)가 월 9,500원에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보여주던 때는? 우버(Uber)가 택시보다 30% 싸면서도 더 깨끗하고 친절했던 2010년대 초반 말이다.

지금은 어떤가. 유튜브는 15초 광고 2개를 강제로 보여주고, 넷플릭스는 2023년부터 광고 요금제를 도입했고, 우버는 수요에 따라 택시보다 비싸다.

엔시티피케이션: 올해의 단어가 된 슬럼화

작가 코리 닥터로우(Cory Doctorow)가 2022년에 만든 단어가 있다. '엔시티피케이션(Enshittification)'. 직역하면 '똥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이 단어가 얼마나 시대정신을 담았으면, 2023년 미국 언어학회 '올해의 단어'로 선정됐다. 2024년엔 호주에서도 '올해의 단어'가 됐다.

"플랫폼은 세 단계로 죽는다. 첫째, 사용자에게 잘한다. 둘째, 사용자를 갈아서 비즈니스 고객에게 판다. 셋째, 비즈니스 고객마저 쥐어짜서 자기들 배만 채운다. 그리고 망한다."

홍대 젠트리피케이션과 묘하게 닮았다. 처음엔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동네였다. 임대료가 싸서 가난한 창작자들의 천국이었다. 그러다 '힙'해지면서 카페가 들어오고, 프랜차이즈가 들어오고, 이제는 예술가들이 살 수 없는 동네가 됐다.

경제학자가 본 필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더 냉정했다.

"네트워크 효과를 가진 모든 비즈니스의 숙명이다.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수학의 문제다."

네트워크 효과란 뭔가? 카카오톡을 생각해보면 된다. 친구가 한 명도 안 쓰면 쓸모없다. 하지만 모두가 쓰면 안 쓸 수가 없다. 사용자가 많을수록 서비스 가치가 올라가는 현상이다.

크루그먼의 분석은 차갑다. 플랫폼은 처음에 손해를 보면서라도 사용자를 모은다. 충분히 모이면? 이제 갇힌 사용자들을 상대로 수익을 뽑아낸다. "승자 독식" 시장의 탄생이다.

실리콘밸리의 공식

페이팔(PayPal) 창업자 피터 틸(Peter Thiel)은 《제로 투 원》에서 대놓고 가르쳤다.

"경쟁은 패자나 하는 것이다. 독점을 만들어라."

페이스북(Facebook)을 보자.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는 2004년 하버드 기숙사에서 시작했다. 처음엔 정말 순수했다. 친구들과 연결하고, 사진 공유하고.

지금은? 알고리즘이 게시물 노출을 제한한다.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려면? 광고비를 내야 한다. 한국에서만 월간 활성 사용자(MAU)가 164만 명이나 줄었다.

우리가 놓친 신호들

매번 같은 패턴이다:

1단계: 천국 (2000년대 중반)

  • 무료 또는 파격적으로 저렴
  • 광고 없음
  • 사용자 경험 최고

2단계: 변화의 시작 (2010년대)

  •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한" 작은 변화들
  • 광고 도입 "선택사항입니다"
  • 유료 프리미엄 출시

3단계: 현재진행형

  • 광고 없이는 못 쓸 지경
  • 가격은 계속 오르고
  • 품질은 계속 떨어지고

구글(Google), 아마존(Amazon), 메타(Meta), 인스타그램(Instagram), 틱톡(TikTok)... 2000년대 이후 탄생한 거의 모든 플랫폼이 이 길을 걷고 있다.

인터넷이 만든 가속도

왜 요즘 이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날까?

과거엔 동네 슈퍼가 독점이 되려면 수십 년이 걸렸다. 인터넷은 이 과정을 5년으로 단축시켰다. 전 세계가 하나의 동네가 됐으니까.

네트워크 효과가 디지털에서는 극대화된다. 비용은 제로에 가깝고, 확장은 무한대다.

심리전의 묘미

재밌는 건 우리의 반응이다. 배신감을 느낀다. "예전엔 착한 회사였는데" 하면서.

틀렸다. 그들은 처음부터 착하지 않았다. 단지 아직 착할 때였을 뿐이다.

홍대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욕하면서도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듯, 우리는 플랫폼의 엔시티피케이션을 욕하면서도 계속 쓴다. 페이스북 사용자가 줄어도, 인스타그램으로 갈아탔을 뿐이다. 같은 회사인데.

그래서 뭐

다음에 새로운 플랫폼이 나타나서 "우리는 다릅니다"라고 할 때, 기억하자.

엔시티피케이션이라는 단어가 '올해의 단어'가 될 정도로, 이제는 모두가 아는 공식이 됐다.

지금 그들이 착한 이유는 딱 하나다.

아직 때가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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