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 개밥먹기
마케터들이 자사 제품을 쓰라고 하면 대부분 이렇게 반응한다. "당연히 써야죠. 안 써보고 어떻게 팔아요?"
하지만 정작 물어보면 절반은 경쟁사 제품을 더 자주 쓰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더 편해서.
개밥먹기(Dogfooding)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만든 제품을 직접 사용하는 것. 1970년대 개 사료 광고에서 유래된 이 용어는 이제 IT 업계의 상식이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가 1988년부터 내부적으로 퍼뜨린 문화다.
그런데 마케터의 개밥먹기는 좀 다르다. 단순히 품질 검증이나 버그 발견이 목적이 아니다. 고객의 마음을 읽는 훈련이다.
볼타팀의 사례가 흥미롭다. 홈페이지 리뉴얼을 앞두고 사업팀 전체가 자사 제품을 다시 써봤다. 매일 쓰던 도구인데도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 "아, 이 기능이 이렇게 불편했구나." "고객들이 왜 이 부분에서 이탈하는지 알겠다."
더 재미있는 건 타사 제품도 써보는 것이다. 에어비앤비(Airbnb) CEO는 일 년에 100일 이상 자사 숙소에 머문다. 하지만 호텔도 자주 이용한다. 경쟁사를 경험해야 자사의 차별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마케터의 개밥먹기엔 함정이 있다. 너무 익숙해지면 고객의 첫 경험을 잊는다. 처음 앱을 깔았을 때의 당황스러움, 첫 주문에서 느낀 불안감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처음처럼" 써봐야 한다. 새 계정을 만들고, 고객센터에 문의도 해보고, 환불 과정도 경험해보는 것이다. 불편하지만 필요한 일이다.
가장 중요한 건 객관성이다. 자사 제품에 대한 애정이 지나치면 고객의 불만을 변명으로 치부하게 된다. "고객이 사용법을 몰라서 그래" 같은 식으로.
진짜 개밥먹기는 쓴맛도 삼키는 것이다. 우리 제품이 정말로 별로일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용기. 그래야 진짜 개선이 시작된다.
마케터의 개밥먹기 체크리스트:
- 일주일에 한 번은 신규 고객처럼 제품 경험하기
- 경쟁사 제품도 정기적으로 사용해보기
- 가족이나 친구에게 제품 써보라고 부탁하기
- 고객센터 상담 내용 정기적으로 읽어보기
- 앱스토어 리뷰 중 별점 낮은 것부터 읽기
개밥이 맛있어야 고객도 먹는다. 하지만 맛없는 개밥인 줄 모르면 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