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10년 묵은 도끼

201X년 대학 특강. 박찬욱이 말했다. "《The Ax》를 영화로 만들 겁니다."
그 후 신작이 나올 때마다 속으로 물었다. "도끼는?"
10년 만에 '어쩔수가없다'로 돌아왔다.
원작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1997년 소설. 제목 'The Ax'는 도끼이자 'get axed'(해고당하다)의 중의법. 실제로 주인공이 쓰는 무기는 도끼가 아니라 아버지가 2차 대전에서 가져온 루거 권총이지만.
줄거리는 이렇다. 버크 데보어, 52세. 제지회사에서 25년 일한 중간관리자. 어느 날 갑자기 구조조정. 18개월 동안 이력서 2000통을 보내지만 전부 거절. 저축은 바닥나고 아내는 불안해한다.
그리고 버크는 깨닫는다. 문제는 경쟁자들이라고.
계획은 정교하다. 먼저 가상의 회사를 만든다. 업계 전문지에 구인광고를 낸다. 자신이 지원하고 싶은 그 자리, 그 조건으로. 수백 통의 이력서가 온다. 그중에서 자신과 가장 비슷한 스펙의 지원자 6명을 고른다. 그리고 목표 회사에서 현재 그 자리에 있는 사람 1명. 총 7명.
버크는 이들을 하나씩 찾아간다. 주소를 추적하고, 일상을 관찰하고, 적절한 때를 기다린다. 첫 번째는 주차장에서. 두 번째는 낚시터에서. 세 번째는 집 앞에서.
살인 사이사이 버크의 일상은 평범하다. 아내와 저녁을 먹고, 딸의 대학 등록금을 걱정하고, 잔디를 깎는다. 구직 활동도 계속한다. 면접 준비를 하면서 동시에 다음 타깃을 물색한다.
90년대 미국, 경제는 호황인데 중산층은 무너지고 있었다. 웨스트레이크는 친구들의 해고 소식을 듣고 이 소설을 썼다. 65세에 쓴 작품. 책은 아버지에게 헌정됐다.
2005년 프랑스에서 코스타-가브라스 감독이 영화화했다. 《Le Couperet》. 주인공을 화학자로 바꿨다. 박찬욱은 그 영화를 모르고 판권을 샀다고.
한국판은 어떨까. 이병헌의 만수도 제지 전문가다. 손예진과 처음으로 부부 연기.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이 조연.
영화 정보는 아직 별로 없다. 포스터 하나, 9월 개봉. 베네치아 영화제 초청.
10년이 걸린 프로젝트. 이제야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