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을 씹어먹고 나온 사람들

창업가들의 이력서에는 보통 이런 스토리가 숨어 있다.
전 직장에서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나왔다는 식으로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그 조직에서 가장 잘 나가던 사람들이다. 실적으로 압도하고, 퍼포먼스로 증명하고, 내부 경쟁에서 이기고.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던진다.
베인 컴퍼니의 탄생이 정확히 이런 케이스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에서 1970년대 초 벌어진 일이다. 창립자 브루스 헨더슨이 회사를 블루, 레드, 그린 세 팀으로 나누고 경쟁시켰다. 내부 혁신을 위한다며.
빌 베인의 블루팀이 압도했다. BCG 매출의 절반 이상을 혼자 벌어들였다. 헨더슨은 베인을 후계자로 점찍었다. 모든 게 완벽했다.
그런데 베인이 갑자기 나가버렸다. 블루팀 시니어 멤버 6명과 함께. 더 충격적인 건 BCG의 대형 고객 7개가 몇 주 만에 베인을 따라간 것이다. Black & Decker, Texas Instruments 같은 거대 기업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사를 갔다.
이게 바로 "조직을 씹어먹고 나온다"는 것의 진짜 의미다. 단순히 불만이 많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조직을 속속들이 알아버린 사람들이다. 어디서 돈이 새는지, 누가 진짜 일하는지, 어떤 프로세스가 뻘짓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베인이 BCG를 나오면서 한 말이 있다. "컨설턴트가 무인도에서 보고서를 병에 넣어 던지는 느낌"이라고. 멋진 분석만 주고 끝나는 게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베인 컴퍼니는 "보고서가 아닌 결과(results, not reports)"를 내세웠다.
사내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이 왜 나가는가? 간단하다. 이길 만큼 이겼기 때문이다. 더 이상 증명할 게 없다. 내부 경쟁의 한계를 봤고, 시스템의 천장을 확인했다. 이제 진짜 경쟁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나와서 "우리는 다르게 할 거야"라고 말한다. 전 회사의 반대편에서 시작한다. 거기서 답답했던 모든 것들의 반댓말로 회사를 만든다.
문제는 그렇게 만든 회사도 시간이 지나면 비슷해진다는 것이다. 규모가 커지고, 사람이 늘고, 프로세스가 생기고.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예전에 떠났던 그 조직과 닮아간다.
그럼 또 누군가는 이 조직을 씹어먹고 나간다. 이번엔 더 많은 실적과 더 큰 고객을 데리고. 그리고 "우리는 다르게 할 거야"라고 말한다.
이게 비즈니스 생태계의 순환이다. 최고의 성과를 낸 사람이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에서 또 최고가 된 누군가가 떠나고.
헨더슨의 내부 혁신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혁신을 만들어냈으니까. 다만 그 혁신이 회사 밖에서 일어났을 뿐이다. 최고의 팀과 최고의 고객을 동시에 잃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