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의 양적완화

"사랑해"의 양적완화

넷플릭스 리얼리티 쇼를 보면 3일 만에 "사랑해"가 나온다. 유튜브 댓글창에는 "사랑해요♡"가 초당 300개씩 올라온다. 인스타 스토리 하트 이모지는 이미 기본값이 됐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이 달러를 찍어낸 것처럼, 우리는 "사랑해"를 무한정 발행하고 있다. 양적완화다.

통화량 조절 실패

1990년대만 해도 "사랑해"는 금본위제였다. 1년에 한두 번, 특별한 날에만 꺼내는 금화 같은 말. 할머니가 손자한테, 아버지가 딸한테 쓰는 무거운 한 마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졌다. 카톡 이모티콘이 등장하고, 인스타 하트가 생기면서 "사랑해"의 금 태환이 중단됐다. 이제는 아무 담보 없이 찍어낼 수 있다.

틱톡에서는 강아지 영상에도 "사랑해", 먹방에도 "사랑해", 춤추는 영상에도 "사랑해". 베네수엘라 볼리바르처럼 휴지조각이 되어간다.

각 플랫폼별 환율

인스타그램 "사랑해" = 0.01원
유튜브 댓글 "사랑해" = 0.001원
카톡 "사랑해" = 10원
직접 만나서 "사랑해" = 1000원

환율이 이 지경이니 차익거래가 발생한다. 온라인에서 "사랑해" 백 번 하고 오프라인에서는 "응" 한 마디.

디플레이션 구역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1970년대 독일 중앙은행처럼 운영한다. 인플레이션 공포증. "사랑해"를 너무 아껴서 10년 사귀고도 "좋아해"만 한다.

이런 사람들의 "사랑해"는 비트코인이다. 희소성은 있는데 실제로 쓰기는 어렵다. 받는 사람도 당황한다. "이거 진짜야? 가짜야?"

시장 조작

가장 웃긴 건 "사랑해" 선물시장이다.

"다음 달에 사랑한다고 할게" (선물)
"조건 충족하면 사랑해" (옵션)
"일단 사랑한다 치고" (파생상품)

레딧에 올라온 글 봤다. 여자친구가 "사랑해"라고 먼저 했는데 남자가 "고마워"라고 대답했단다. 댓글 500개 달렸다. 다들 환율 계산하느라 바빴다.

중앙은행의 딜레마

연애 초반에는 다들 매파다. "사랑해" 발행량을 조절한다. 3개월은 기다려야지, 6개월은 돼야지.

그러다 어느 순간 비둘기파가 된다. 상대방이 "사랑해" 안 하면 불안해서 자기가 먼저 양적완화 시작. 하루에 10번씩 "사랑해" 발행.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오면 못 막는다는 거다. 한 번 "사랑해" 10번 하던 사람이 갑자기 줄이면? 그게 긴축이고, 그게 이별 신호다.

실물경제

진짜 문제는 명목가치와 실질가치의 괴리다.

유튜브에서 "사랑해요" 1만 개 받은 유튜버가 실제로 사랑받는가? 인스타에서 하트 500개 받은 사진이 정말 사랑스러운가?

GDP는 늘어나는데 행복지수는 그대로인 것처럼, "사랑해" 총량은 늘어나는데 실제 사랑은 그대로다.

어제 카페에서 커플이 싸우는 거 봤다. 여자가 말했다.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화폐가치가 떨어지면 실물을 요구하게 된다. 금으로 바꿔달라고. 부동산으로 바꿔달라고.

짐바브웨는 결국 달러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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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이 새로운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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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광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게 힘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진짜 권력을 가진 자들은 소셜 미디어에 없다.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 앞에 서는 건 이제 착취당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에 가깝다. 알고리즘의 먹잇감이 되거나 봇의 타겟이 되거나. 1980년대에 가죽 재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게 반문화였다면, 2024년의 반문화는 다르다. 플랫폼에 착취당하지 않는 것.

동전 던지기 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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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코인을 산다. 옵션을 산다. 밈주식을 산다. 어른들은 무책임하다고 말한다. 투기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숫자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울에서 집 한 채를 사려면 소득의 14배가 필요하다. 한 푼도 쓰지 않고 14년을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뉴욕은 9.7배다. 1985년 이후 미국의 가구 소득은 252% 올랐다. 주택 가격은 403% 올랐다. 열심히 일하면 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