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사용자 수백 명으로 시작한 레딧

2005년 여름, 버지니아 대학 기숙사. 두 명의 컴퓨터 과학도가 음식 주문 앱 아이디어를 들고 보스턴으로 향했다. SMS로 피자를 시키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당연히 거절당했다.
그런데 Y Combinator의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이 이상한 제안을 한다. "인터넷의 프론트 페이지를 만들어보는 게 어때?"
12,000달러. 지금 환율로 1,500만원 정도. 이게 전부였다.
텅 빈 사이트의 딜레마
스티브 허프먼(Steve Huffman)과 알렉시스 오하니언(Alexis Ohanian)은 사이트를 만들었다. 문제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 게시물도 없고, 댓글도 없고, 투표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한 일? 가짜 계정을 수백 개 만들었다.
아침에는 tech_guru_2005로 접속해서 기술 뉴스를 올리고, 점심에는 movie_buff_88로 영화 리뷰를 쓰고, 저녁에는 random_dude_42로 댓글을 달았다. 각자 다른 인격으로 대화를 나누고, 논쟁을 벌이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일종의 디지털 인형극이었다.
첫 번째 진짜 사용자
폴 그레이엄이 자신의 에세이에서 레딧을 언급했다. 첫날 1,000명이 들어왔다. 허프먼과 오하니언은 당황했다. 갑자기 진짜 사람들이 가짜 커뮤니티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미있는 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여기 사람들 수준 높네"라는 반응이 나왔다.
1,000만 달러의 거래
2006년, 콘데 나스트(Condé Nast)가 레딧을 인수한다. 정확한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1,000만~2,000만 달러 사이로 추정된다. 1년 만에 투자금의 1,000배를 벌어들인 셈이다.
허프먼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만든 건 플랫폼이 아니라 문화였다. 가짜로 시작했지만, 그 가짜가 만든 분위기가 진짜가 되었다."
2025년의 레딧
월간 활성 사용자 13억 6천만 명. 시가총액 275억 달러.
그런데 여전히 누군가는 여러 계정으로 자작 댓글을 달고 있을지도 모른다. 레딧의 DNA에는 여전히 그 여름날의 인형극이 새겨져 있으니까.
가짜가 진짜가 되는 순간. 그게 인터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