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틸이 본 균열, 맘다니가 증명한 균열
2020년의 경고
피터 틸이 2020년에 페이스북 경영진에게 보낸 이메일은 예언이었다. 억만장자 벤처 캐피탈리스트가 사회주의를 옹호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는 자본주의가 망가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젊은 세대의 사회주의 경향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틸에게 이건 단순한 정치적 유행이 아니었다. 구조적 실패의 증상이었다. 그는 젊은이들이 "멍청하거나 특권 의식이 있거나 세뇌당했다"고 치부하는 걸 거부했다. 그들에겐 이유가 있었다.
자본주의가 그들을 위해 작동하지 않았다.
틸의 진단은 명확했다. 세대 간 계약이 파열됐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대학 가고, 집 사고, 경력 쌓으면 됐다. 밀레니얼 세대는? 똑같이 했는데 빚더미에 앉았다. Gen Z는 더 심했다.
숫자가 거짓말하지 않았다. 2000년에 3천억 달러였던 학자금 대출이 2조 달러를 넘었다. 미국 청년의 80% 이상이 학자금 부채 때문에 집을 못 샀다. 창업도 못 했다. 결혼도 미뤘다.
부동산은 더 심각했다. 틸은 "문화 전쟁의 80%는 경제 문제고, 경제 문제의 80%는 부동산"이라고 말했다. 구역 설정법과 건축 규제가 주택 공급을 막았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베이비부머한테는 좋았다. 자산 가치가 올랐으니까. 밀레니얼한테는? 재앙이었다.
"젊은이들을 프롤레타리아화하면, 그들이 공산주의자가 되어도 놀라지 마라."
틸의 경고는 단순했다. 젊은이들이 친사회주의적이라기보다 덜 친자본주의적이다. 자본주의가 그들에게 불공정한 책략으로 보인다. 사기처럼 보인다. 룰이 부자한테 유리하게 짜여있으니까.
2025년의 증명
5년 후, 틸의 경고가 현실이 됐다.
뉴욕 시장 선거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 조란 맘다니가 이겼다. 39세.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 퀸즈에서 자랐다. 배우로 시작했다가 정치로 옮겼다. 뉴욕 주의회를 거쳐 시장이 됐다.
그의 공약은 급진적이었다. 무료 대중교통. 임대료 동결. 보편적 보육. 최저임금 대폭 인상. 부자 증세. 경찰 예산 삭감.
기성 정치권은 비웃었다.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재정 건전성을 해친다"고 했다. "포퓰리즘"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 사설은 우려를 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경고했다.
맘다니는 이겼다. 압승이었다.
왜? 틸이 2020년에 진단한 바로 그 이유들 때문이었다. 맘다니의 유권자들은 임대료와 학자금 대출에 시달렸다. 그들에게 기성 정치권의 약속은 농담이었다. "세금 공제", "이자율 조정", "청년 지원금". 20년간 들었는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맘다니는 달랐다. 그는 문제를 직시했다. 시스템이 망가졌다고 말했다.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틴 루터 킹의 말을 인용했다. "이 나라의 모든 신의 자녀들을 위해 더 나은 부의 분배가 있어야 한다."
기성 정치권이 문제를 인정조차 하지 않을 때, 문제를 직시하는 자가 이긴다.
오버톤 창의 역설
맘다니의 승리를 이해하려면 오버톤 창을 이해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미시간 매키나 센터의 정책 분석가 조셉 오버톤이 발견한 개념이다. 정치인이 지지할 수 있는 정책의 범위가 고정돼있다는 것. 여론이 받아들일 준비가 된 아이디어만 정치적으로 생존 가능하다는 것.
오버톤은 이 범위를 창문에 비유했다. 창 안의 아이디어는 안전하다. 창 밖의 아이디어는 정치적 자살이다. 정치인은 본능적으로 창 안에 머문다.
오버톤 창은 스펙트럼이다. 상상 불가능 → 급진적 → 수용 가능 → 합리적 → 대중적 → 정책화. 아이디어는 이 단계를 천천히 거쳐 움직인다.
예를 들어 동성 결혼은 1990년대엔 "상상 불가능"이었다. 2000년대에 "급진적"이 됐다. 2010년대에 "수용 가능"해졌다. 2015년 대법원 판결로 "정책화"됐다. 25년 걸렸다.
천천히. 이게 오버톤 창의 본질이다. 점진적으로 움직인다.
문제는 현실이 천천히 변하지 않는다는 거다.
간극의 폭발
2000년과 2025년 사이, 미국 학자금 대출은 7배 증가했다. 집값 대비 소득 비율은 2배 이상 올랐다. 한 세대 만에 게임의 룰이 완전히 바뀌었다.
하지만 오버톤 창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기성 정치권은 여전히 같은 해결책을 내놓았다. "학자금 대출 이자율 조정." "첫 주택 구입자 세금 공제." "청년 창업 지원금." 창 안의 정치였다. 안전했다. 논란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2조 달러 학자금 대출을 이자율 조정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집값 폭등을 세금 공제로 막을 수 없었다. 미봉책이었다.
진짜 해결책은 창 밖에 있었다. 대학 무상화. 전체 학자금 대출 탕감. 주택 건설 규제 전면 철폐. 임대료 통제. 부의 재분배.
정치인이 이런 얘기를 하면? "비현실적"이라고 욕먹었다. "공산주의"라고 매도당했다. "포퓰리즘"이라고 비난받았다. 그래서 아무도 안 했다.
틸이 2020년에 진단한 게 바로 이거였다. 기성 정치권이 주택과 학자금 대출 같은 매우 기본적인 문제들을 다루지 못했다. 아니, 이야기조차 하지 못했다. 오버톤 창이 그걸 막았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 유권자들이 오버톤 창 밖으로 나간다. 급진적 해결책을 찾는다. 사회주의로. 맘다니에게로.
창 안에 해결책이 없으면, 사람들은 창을 깨고 나간다.
맘다니의 돌파
맘다니가 한 일은 간단했다. 오버톤 창 밖의 정치를 했다.
임대료 동결? 경제학자들이 반대한다. 역사적으로 실패했다고 한다. 창 밖이다. 맘다니는 공약했다.
무료 대중교통? 재정 건전성을 해친다고 한다. 비현실적이라고 한다. 창 밖이다. 맘다니는 공약했다.
부자 증세? 월스트리트가 반대한다. 자본 유출을 우려한다. 창 밖이다. 맘다니는 공약했다.
틸은 맘다니의 정책이 작동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임대료 통제는 주택 공급을 줄인다. 무료 대중교통은 재정 압박을 준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악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요점이 아니다.
요점은 맘다니가 문제를 직시했다는 거다. 기성 정치권이 20년간 회피한 문제를. "주택은 기본권이다." "교통은 공공재다." "부는 재분배돼야 한다." 이 말을 공개적으로 했다.
유권자들은 그걸 원했다. 완벽한 해결책을 원한 게 아니었다. 문제 인정을 원했다. 진정성을 원했다. 시도라도 하겠다는 의지를.
틸이 2020년에 말한 대로였다. "바이든 행정부가 학자금 대출에 대해 미미하게 손보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오버톤 창 밖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맘다니는 그 해결책이었다. 창 밖에서 나온.
진정성의 정치
틸은 맘다니와 트럼프의 유사점을 지적했다. 둘 다 기성 정치권 밖에서 왔다. 둘 다 급진적 공약을 내걸었다. 둘 다 "비현실적"이라고 비난받았다.
그리고 둘 다 이겼다.
왜? 진정성 때문이었다.
틸의 표현대로, 젭 부시 같은 기성 정치인은 "극도로 가짜처럼 보이게 정확하게 안무되어 있다." 모든 말이 포커스 그룹에서 테스트됐다. 모든 동작이 계산됐다. 가짜였다.
트럼프는? 필터 없이 말했다. 말실수를 했다.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진짜처럼 보였다.
맘다니는? 배우 출신이었다. 이민자 2세였다. 퀸즈에서 자랐다. 임대료 문제를 몸으로 겪었다. 진짜였다.
기성 정치권은 이들을 비진정적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기성 정치권 자체가 가짜였으니까. 트럼프와 맘다니는 어쨌든 더 진정성이 있었다.
시스템이 가짜면, 가짜처럼 보이는 정치인은 신뢰받지 못한다.
이게 틸이 본 미래였다. "2016년 트럼프가 중서부의 경제적 절망 때문에, 맘다니가 브루클린의 경제적 절망 때문에 권력을 잡았다는 사실은 정치의 미래가 계급 전쟁에 있음을 시사한다."
계급 전쟁. 세대 전쟁. 프롤레타리아 대 자본가. 마르크스가 19세기에 예측한 게 21세기에 현실이 되고 있었다.
창이 움직이지 않으면
틸의 2020년 경고는 조건부였다. "10년 후 미국과 세계의 상태에 즐겁게 놀라게 되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의 정치적 주류층과 지도자들이 이러한 문제들 중 일부를 실제로 해결하는 것이다."
5년 지났다. 문제들이 해결됐나? 아니다. 악화됐다.
학자금 대출? 계속 증가한다. 바이든이 일부 탕감했지만 근본적 해결은 안 됐다. 대학 학비는 여전히 오른다.
부동산? 더 심각하다. 팬데믹 이후 집값이 폭등했다. 원격 근무로 교외 수요가 늘었다. 공급은? 여전히 부족하다. 규제가 막는다.
오버톤 창은? 조금 움직였다. 학자금 대출 탕감이 "급진적"에서 "수용 가능"으로 왔다. 하지만 "정책화"까지는 못 갔다. 법원이 막았다. 공화당이 막았다.
부동산 규제 철폐는? 여전히 창 밖이다. NIMBY(Not In My Backyard)가 막는다. 기존 주택 소유자들이 반대한다. 그들이 투표한다. 권력이 있다.
그래서 맘다니가 이긴 거다.
한국의 균열
같은 균열이 한국에도 있다.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 12억. 중위 가구 소득: 6천만 원. 비율: 20배. 베이비부머 세대는 5-7배였다. 지금은 20배다. 불가능하다.
학자금 대출도 증가한다.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청년들을 짓누른다. 취업도 안 된다. 빚만 쌓인다.
그런데 정치는? "청년 전세 대출 확대." "생애 최초 취득세 감면." 오버톤 창 안의 정치다. 미봉책이다.
진짜 해결책은? 주택 대량 공급. 규제 철폐. 용적률 상향. 재건축 허용. 하지만 이건 창 밖이다. 기존 주택 소유자들이 반대한다.
청년들은? 좌절한다. 분노한다. 시스템을 불신한다.
틸이 말한 "정치적 강세장"이 한국에도 있다. 성장이 멈췄다. 모든 게 제로섬이다. 정치가 실존적이다. 이념 대립이 격화된다.
언젠가 한국판 맘다니가 나올 것이다. 오버톤 창 밖에서. 급진적 공약을 들고. "주택은 기본권", "대학 무상화", "부의 재분배". 그리고 이길 것이다.
왜? 기성 정치권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니까.
틸의 냉정한 진실
틸은 혁명을 믿지 않는다. 그는 베이비부머-밀레니얼 역학이 혁명의 패턴에 맞긴 하지만, 인구 통계학이 다르다고 본다. 젊은이가 적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청년 운동이다. 하지만 현재는 젊은 사람들의 수가 훨씬 적다."
그래서 미국이 사회주의가 된다면? 노인들의 사회주의가 될 것이다. 무상 의료. 연금 확대. 혁명적이지 않다. 온건하다. 점진적이다.
맘다니의 승리가 그걸 보여준다. 급진적 수사지만 실제 정책은? 복지 확대다. 공공 서비스 증대다. 북유럽 모델이다. 혁명이 아니다.
하지만 틸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기득권 정당들이 매우 기본적인 문제들을 다루지 못하고 세대 간 계약을 파기했다는 징후다. 상황이 매우 건강하지 않다."
오버톤 창과 현실 사이의 간극. 이게 모든 걸 설명한다.
선택
기득권에게 선택지가 있다.
첫째, 자발적으로 창을 움직인다. 학자금 대출을 탕감한다. 대학을 무상화한다. 주택 규제를 철폐한다. 대량으로 짓는다. 부를 재분배한다. 청년들이 시스템 안에서 성공할 수 있게 만든다.
급진적으로 들린다. 창 밖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구하는 길이다. 루즈벨트가 1930년대에 한 것처럼.
둘째, 버틴다. 창을 움직이지 않는다. 미봉책만 내놓는다. 청년들이 폭발할 때까지 기다린다. 맘다니 같은 사람들이 계속 이긴다. 시스템이 천천히 무너진다.
폭력적이지 않다. 혁명적이지 않다. 하지만 근본적이다. 자본주의가 끝나는 건 아니지만, 변형된다. 인식할 수 없을 만큼.
틸은 첫째를 원한다. 자본주의자니까. 하지만 둘째가 올 거라고 본다. 기득권이 움직이지 않으니까.
맘다니는 시작이다. 경고다. 청년들이 창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는. 사회주의가 "상상 불가능"에서 "정책화"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오버톤 창은 움직인다. 기득권의 의지와 무관하게. 위기가 충분히 심각해지면. 맘다니가 그걸 증명했다.
틸이 2020년에 본 균열을. 맘다니가 2025년에 증명했다.
문제는 간단하다. 현실이 변했다. 빠르게. 극적으로. 하지만 정치는 변하지 않았다. 오버톤 창이 못 따라갔다. 간극이 벌어졌다.
해결책도 존재한다. 창을 움직이면 된다.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청년들이 기다리지 않는다. 역사가 기다리지 않는다.
창이 움직이지 않으면, 깨진다. 맘다니가 그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