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버그, 시스템이 정답 - 팔굽혀펴기 1개의 철학

목표는 버그, 시스템이 정답 - 팔굽혀펴기 1개의 철학

스콧 애덤스는 목표 설정이 사기라고 주장한다. "10kg 감량" 같은 목표를 세우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지만, 실은 미래의 나에게 숙제를 떠넘긴 것뿐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계속 실패자고, 달성한 순간 목표는 사라진다.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는 평생 실패자로 살다가 잠깐 성공했다가 다시 실패자가 되는 구조 속에 갇혀 있다.

그래서 그는 색다른 제안을 한다. 목표 대신 시스템을 만들라고.

게임의 규칙을 바꾸기

목표와 시스템의 차이는 이렇다:

목표형 인간: "올해 안에 소설을 출간하겠다"
→ 11개월 동안 실패자 → 출간하면 1개월 성공 → 다시 새 목표 필요

시스템형 인간: "매일 아침 500단어씩 쓴다"
→ 오늘도 성공 → 내일도 성공 → 글이 쌓이는 건 부산물

시스템의 묘미는 성공의 정의를 바꾸는 데 있다. 매일이 작은 승리가 된다. 500단어를 썼다면 오늘은 성공한 날이다. 소설이 나오든 안 나오든.

더 중요한 건 확률이다.

일주일에 한 번 영감받아 5,000단어 쓰는 사람 vs 매일 500단어 쓰는 사람. 1년 후 누가 소설을 완성할 확률이 높을까?

답은 명확하다. 시도 횟수가 많은 쪽이 이긴다. 카지노도 그래서 돈을 번다. 개별 게임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시도 횟수가 충분하면 확률은 결국 수렴한다.

확률의 게임

스콧 애덤스는 인생을 확률 게임으로 본다.

한 독자가 이런 통찰을 보냈다: "뽕 맞고 3시간 운동하는 사람보다, 매일 팔굽혀펴기 1개라도 하는 사람이 결국 더 건강해집니다."

정확하다. 스콧 애덤스가 말하려던 게 바로 이거다.

열정형: 한 달에 4번, 3시간씩 = 연 48회 운동

시스템형: 매일 5분씩 = 연 365회 운동

열정은 변덕스럽다. 오늘은 불타오르다가 내일은 꺼진다. 하지만 시스템은 감정과 무관하다. 기분이 좋든 나쁘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팔굽혀펴기 1개는 할 수 있다.

이게 바로 확률적 사고다. 매일 1%의 개선 가능성을 만드는 사람과, 가끔 100%의 노력을 쏟는 사람. 1년 후 누가 더 나아져 있을까?

시도의 복리 효과

주식투자에는 복리가 있다. 스콧 애덤스는 인생에도 복리가 있다고 본다.

"매일 조금씩 시도하면, 실패도 복리로 쌓입니다."

36번의 사업 실패는 36개의 데이터포인트였다. 각각의 실패에서 배운 0.1%의 지혜가 쌓여서 딜버트를 만들었다.

반면 "올인"은 복리가 없다. 성공하면 100, 실패하면 0. 도박이다.

평범함의 연금술

스콧 애덤스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저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합니다. 글도 특별히 잘 쓰지 못해요. 비즈니스 지식도 평균 수준이고, 유머 감각도 그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네 가지를 조합하니 딜버트가 나왔다. 한 분야에서 상위 1%가 되는 건 지옥이지만, 여러 분야에서 상위 25%가 되는 건 가능하다.

그는 이걸 '재능 스택(Talent Stack)'이라고 부른다.

평범한 회사원이라면?

  • 엑셀 실력 (상위 30%)
  • 프레젠테이션 (상위 40%)
  • 영어 (상위 30%)
  • 업계 지식 (상위 25%)

각각은 평범하지만, 네 개를 다 가진 사람은 드물다. 0.3 × 0.4 × 0.3 × 0.25 = 0.009. 상위 1%가 되는 거다.

"천재가 되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냥 여러 가지를 적당히 잘하세요."

에너지 장사꾼

시간 관리에 대한 책은 넘쳐난다. 하지만 스콧 애덤스는 묻는다:

"새벽 5시에 일어났는데 피곤해서 멍하니 있으면 무슨 소용이죠?"

그래서 그는 시간이 아닌 에너지를 관리한다. 그의 에너지 시스템은 구체적이다:

아침: 단백질 위주 식사 (혈당 스파이크 방지)

오전: 가장 어려운 일 처리 (에너지가 최고일 때)

점심 후: 20분 산책 (오후 슬럼프 방지)

오후: 단순 작업이나 미팅

저녁: 운동 (다음 날 에너지 투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표를 짜지만, 저는 에너지표를 짭니다."

단순함의 미학

성공한 사람들의 루틴을 보면 현기증이 난다. 새벽 4시 기상, 명상 1시간, 운동 2시간...

스콧 애덤스의 조언은 정반대다. "바보도 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게 만들어라."

복잡한 시스템은 며칠 못 간다. 하지만 "일어나면 물 한 잔 마시기" 같은 단순한 시스템은 평생 갈 수 있다.

단순함이 곧 지속가능성이고, 지속가능성이 곧 높은 성공 확률이다.

버그를 특징으로

프로그래머들은 가끔 이런 농담을 한다:

"그건 버그가 아니라 기능입니다(It's not a bug, it's a feature)."

스콧 애덤스의 철학이 딱 이렇다. 목표 달성에 실패하는 게 버그가 아니라, 애초에 목표를 세우는 게 버그다. 그래서 아예 다른 운영체제(시스템)를 깐 것이다.

그래서 뭐가 다른데?

한국의 자기계발서는 주로 이렇게 말한다:

"더 열심히! 더 간절하게! 포기하지 마!"

스콧 애덤스는 이렇게 말한다:

"더 게으르게. 더 쉽게. 포기해도 돼."

역설적이게도, 쉬운 길을 선택한 사람이 더 멀리 간다. 매일 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일을 하는 사람이, 한 번에 큰일을 하려는 사람보다 결국 더 많은 일을 한다.

성공은 목표가 아니라 습관에서 온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데이터다.

그리고 가장 게으른 방법이 때로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확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매일 1%의 가능성을 쌓는 사람이, 가끔 100%를 쏟아붓는 사람을 이긴다.

팔굽혀펴기 1개가 3시간 헬스를 이기는 세상.

그게 스콧 애덤스가 발견한 성공의 버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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