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사이드 허슬의 실체
사이드 허슬이라는 말이 옅어지고 있다. 2020년엔 "부업"이었다. 2023년엔 "n잡"이었다. 2026년엔 그냥 "살아남기"다.
변한 건 단어가 아니다. 구조가 바뀌었다. 월급만으로는 자산을 못 만든다는 게 통념이 되어버렸다. 집값은 올랐다. 주식은 올랐다. 암호화폐는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월급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이 아니라 "레버리지(Leverage)"를 찾기 시작했다.
AI가 그 레버리지의 중심에 있다. 코딩을 몰라도 앱을 만들 수 있다. 글을 못 써도 콘텐츠를 찍어낼 수 있다. 목소리를 녹음하지 않아도 영상이 돌아간다. 안드레아 카파시(Andrej Karpathy)가 이름 붙인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 Replit Agent나 Cursor 같은 도구에 "이런 느낌으로 만들어줘"라고 말하면, 실제로 작동하는 프로그램이 나온다. 코드를 한 줄도 읽지 못해도 상관없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이제 "만들 수 있는 사람"과 "만들 수 없는 사람"의 경계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2020년엔 개발자를 고용해야 했던 일을 2026년엔 ChatGPT와 두 시간 대화하면 끝낸다. 그래서 1인 마이크로 SaaS가 터졌다. 거창한 스타트업이 아니라, 특정 니치의 문제 하나를 해결하는 작은 도구. 그걸 만들어서 월 100만 원씩만 벌어도 된다. 열 개 만들면 천만 원이다.
근데 모두가 이 게임을 하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다른 쪽으로 갔다. 폴리마켓(Polymarket)이나 칼시(Kalshi) 같은 예측 시장에서 베팅을 한다. 밈코인(Memecoin)을 산다. 이건 "일"이 아니다. 투기다. 그런데 젊은 층은 이걸 투기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냥 "유일하게 남은 상승 기회"라고 부른다.
"금융 허무주의(Financial Nihilism)"
근로 소득으로는 절대 자산을 못 만든다는 생각. 시스템이 이미 망가졌으니 복권이라도 긁어야 한다는 심리. 데이터를 보면 폴리마켓 사용자의 70%는 돈을 잃는다. 밈코인은 더 심하다. 내부자 거래와 사기가 난무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계속한다. 왜냐하면 "어차피 정상적으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분기가 생긴다. AI 레버리지를 쓰는 사람들은 생산한다. 예측 시장에 가는 사람들은 투기한다. 둘 다 "월급만으론 안 된다"는 동일한 전제에서 출발했지만, 하나는 가치를 만들고 하나는 제로섬 게임을 한다. 2026년의 사이드 허슬은 이 두 갈래로 완전히 쪼개졌다.
그 사이 어딘가에 콘텐츠 자동화가 있다. 얼굴도 안 보여주고, 목소리도 안 녹음하고, AI 툴만 조합해서 유튜브 쇼츠를 하루에 15개씩 찍어낸다. 구글 트렌드에서 뜨는 키워드 뽑고, ChatGPT로 대본 쓰고, Clipchamp로 편집한다. 광고 수익이 들어온다. 심지어 "가짜 라이브" 스트리밍도 있다. 녹화된 영상을 반복 송출하면서 라이브인 척한다. 후원금이 쌓인다. 플랫폼은 알지만 방치한다.
이건 윤리적으로 회색지대다. 하지만 작동한다. 그리고 수익이 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다. 왜냐하면 "정직하게 콘텐츠 만드는 것"과 "자동화로 물량 공세하는 것" 중에서, 후자가 더 빨리 돈을 벌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터 경제의 어두운 면이다.
반대편엔 전문성이 있다. AI가 범용 업무를 다 해치우면서, 인간의 "판단력"이 필요한 영역이 오히려 프리미엄이 됐다. Forward Deployed Engineer(FDE) 같은 역할이 그렇다. AI를 기업 내부 데이터에 통합하는 "라스트 마일" 해결사. 단순히 툴을 설치하는 게 아니라, 복잡한 워크플로우를 뜯어고쳐서 AI가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사람. 이건 시간당 비용이 아니라 프로젝트 단위로 받는다. 한 번 계약하면 몇천만 원이다.
"지루한 산업"도 기회다.
배관공, 잔디 깎기 수리점, 세탁소. 이커머스처럼 경쟁이 미친 분야가 아니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오프라인 비즈니스. 여기에 카피라이팅 서비스를 팔면 된다. 이 사람들은 마케팅을 모른다. 웹사이트도 엉망이다. 하지만 돈은 번다. 그들에게 글을 써주고, 매출을 올려주면, 기꺼이 돈을 낸다. AI가 대신 글을 써주니까 품은 안 든다. 성과만 증명하면 된다.
그리고 외로움 경제가 있다. 디지털에 지친 사람들이 오프라인으로 돌아오고 있다. TimeLeft 같은 서비스는 이사, 이혼, 금주 등 인생 전환기에 있는 사람들을 저녁 식사 자리로 연결해준다. 데이팅 앱처럼 가볍지도 않고, 네트워킹처럼 딱딱하지도 않다. 그냥 밥 먹고 얘기하는 자리. 이게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사람들은 연결을 원한다. 진짜 사람과의 연결. AI는 이걸 못 준다.
여기서 패턴이 보인다. AI가 "실행 비용"을 0으로 만들었다. 코딩, 글쓰기, 편집, 디자인. 전부 자동화됐다. 그래서 레버리지를 쓸 수 있는 사람은 혼자서도 사업을 굴린다. 하지만 AI가 못 하는 것도 명확해졌다. 맥락 파악, 오프라인 연결, 복잡한 의사결정. 이 영역이 오히려 더 비싸졌다.
결과적으로 2026년의 사이드 허슬은 두 가지로 수렴한다. AI를 써서 혼자 만들거나, AI가 못 하는 걸 팔거나. 중간은 없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는 통하지 않는다. "매출을 얼마 올려드리겠습니다"만 통한다. 성과 기반 과금이 대세가 된 이유다. 구독 피로도가 높은 시대에, 결과가 나왔을 때만 돈을 내면 된다는 제안은 강력하다.
그래서 이제 "사이드 허슬"이라는 말 자체가 어색하다. 이건 더 이상 부업이 아니다. 메인 소득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포기할 수도 있는 것. 레버리지를 못 찾으면 월급만 받는다. 레버리지를 찾으면 시스템을 만든다. 그 사이에 투기가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냥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