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피니는 정말 사토시 나카모토였을까

할 피니는 정말 사토시 나카모토였을까

암호화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매혹적인 미스터리가 다시 화제다. 2025년 들어 할 피니(Hal Finney)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새로운 '증거들'이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 증거들이 진짜일까?

할 피니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그는 비트코인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사토시 나카모토로부터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를 받은 사람이자, 비트코인 코드에 첫 번째 개선사항을 제안한 개발자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2014년 ALS(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사토시와 가장 활발히 소통했던 몇 안 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노트북에서 발견된 미스터리

이야기는 2020년 할 피니의 유족들이 그의 개인 노트북을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그 안에는 2008년 11월과 2009년 1월 사토시와 주고받은 수십 통의 미공개 이메일이 들어있었다. 이메일들은 비트코인 초기 개발 과정에서의 긴밀한 협력을 보여줬다. 기술적 디테일부터 철학적 논의까지, 마치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치밀한 사고 과정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첫 번째 의문이 생긴다. 이것이 정말 두 사람 간의 대화일까, 아니면 한 사람이 연출한 정교한 자작극일까? 천재들은 종종 자신과 대화하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곤 한다. 할 피니 정도의 프로그래머라면 여러 이메일 계정으로 자신과 토론하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2023년, 비트코인 연구자 제임슨 로프가 결정적인 반박 증거를 제시했다. 2009년 4월 18일, 할 피니가 10마일 달리기 대회에 참가하고 있을 때 사토시가 32.5 BTC를 거래하고 이메일을 보냈다는 기록을 발견한 것이다. 아무리 천재라도 두 곳에 동시에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2009년의 놀라운 예언

그렇다면 할 피니는 단순히 비트코인 얼리어답터에 불과했을까? 그의 2009년 초 예측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할 피니는 당시 비트코인 하나당 가치가 거의 0에 가까웠던 시절에 "만약 비트코인이 세계 지배적 결제 시스템이 된다면 개당 1천만 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희망사항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의 결과였다. 그는 당시 세계 총 자산을 100-300조 달러로 추정하고, 2100만 개의 비트코인으로 나눠 계산했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놀랍도록 정확한 예측이었다. 비트코인은 아직 1천만 달러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의 논리적 프레임워크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단순히 사토시의 조력자에 그쳤을 리 없다는 것이 할 피니 = 사토시 이론의 핵심 논리다. 하지만 뛰어난 예측력이 곧 비트코인 창시자라는 증명은 아니다. 할 피니는 이미 암호학과 디지털 화폐 분야의 선구자였기 때문에 비트코인의 잠재력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스페이스 퀘스트와 버카조이드의 우연

최근 가장 화제가 된 이론은 1991년 시에라 온라인의 게임 '스페이스 퀘스트 4'와의 연관성이다. 이 게임에는 'B'에 세로 줄이 그어진 '버카조이드'라는 가상 화폐가 등장한다. 놀랍게도 이 디자인은 20년 후 등장한 비트코인 로고와 거의 동일하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게임의 개발진에 '사토시 우에사카'와 '로드니 나카모토'라는 두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두 이름을 합치면 '사토시 나카모토'가 된다. 할 피니가 이들과 함께 일했고, 훗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페르소나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이 이야기가 처음 온라인에 등장한 시점이 2025년 3월이고, 동시에 '버카조이드'라는 밈코인이 솔라나 블록체인에서 출시됐다는 점이다. 암호화폐 세계에서 이런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십중팔구 밈코인 마케팅을 위한 정교한 스토리텔링일 가능성이 높다.

10년 잠든 지갑의 깨어남

그런데 2024년 9월, 정말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할 피니와 연결된 지갑에서 10년간 잠들어 있던 46 BTC가 갑자기 크라켄 거래소로 이체된 것이다. 당시 가치로 28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이었다.

할 피니는 2014년 사망했고, 그의 개인키는 가족들에게 상속됐다. 가족들이 생활비를 위해 비트코인을 현금화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10년 동안 단 한 번도 건드리지 않던 지갑이 갑자기 활성화된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혹시 할 피니가 남긴 또 다른 단서가 있는 것일까?

미스터리는 계속된다

결국 할 피니가 사토시 나카모토인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2024년과 2025년에 등장한 새로운 '증거들'은 대부분 추측이거나 마케팅에 불과하다. 오히려 제임슨 로프의 연구처럼, 할 피니가 사토시가 아니라는 증거가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할 피니의 위상을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그는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니더라도 비트코인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비트코인의 첫 번째 사용자이자, 가장 충실한 지지자이자, 가장 뛰어난 개발자였다.

어쩌면 사토시의 정체가 영원히 베일에 싸여 있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제임슨 로프의 말처럼 "인간은 비판받고 정치적 공격을 받을 수 있지만, 신화는 시간의 시험을 견딜 것"이니까. 비트코인이라는 혁명적 아이디어는 그 창시자의 정체보다 훨씬 중요하다.

할 피니는 2014년 마지막 트윗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트코인을 살고 있다." 그가 사토시든 아니든, 이 말은 여전히 진실이다. 비트코인은 이제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닌 인류 공동의 자산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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